상식적 이해를 위한 성서와 교리 비평/교리
여자는 여신 ‘엘’이 만들었다고 보아야 자연스럽다
YoungSoul's pen
2021. 9. 15. 20:36
인간창조를 의논하는 신들(엘로힘, ‘엘’들)
창1:26에 의하면 인간을 창조하기 이전에 하나님들(엘로힘)이 먼저 의논한다. 복수형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둘이다. 이를 두고 엘로힘이라는 복수형태는 유일신 야웨를 표상하는 장엄의 복수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교리맹신자들이 있다. 복수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엘로힘은 그리스도교의 한 분 하나님을 장엄하게, 그리고 거대할 뿐만이 아니라 전혀 침범할 수 없는 거룩성을 지닌 하나님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는 복수형 표현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당당하게 제시한다. 영미에서 학위를 받은 자들 중 조직신학을 했다는 자들도 두드러지게 나서서 이런 주장을 해댄다.
일부의 또 다른 교리맹신자들은 복수형 엘로힘이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를 가리킨다고 우긴다. 그렇다면 한 분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서로 의논했다는 논리가 된다. 만일 그것이 옳은 관점이라면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한 분 하나님이 아니다. 한 분이 세 위격으로 나누어져 의논한다는 것은 명백히 삼신론 개념이지 유일신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일신 개념이라면 의논대상자가 없어야 논리적으로 적합하다. 하지만 교리맹신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논리의 적합성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방어적 비논리만을 계속 반복할 뿐이다.
성서의 어휘들은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의미에서 보편지성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이해되어야 한다. 성서어휘는 저 고대에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전달된 종교교육용 언어이기 때문에 이런 따위의 논리로 그리스도교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정립된 내용을 주사기에 꽂아 약물 주입하듯 하면 본문 구절이 말하는 의미의 왜곡과 굴절만이 더욱 깊어질 뿐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복수형은 둘 이상을 나타낸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본문의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 둘을 나타내는 엘로힘(‘엘’들)이 의논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간존재의 외적 형태에 대한 논의이다. 창1:26에 “히브리어 단어들이 연결되어 기록된 히브리어 문장에 의하면” 복수형태의 엘로힘이 의논한 것은, 인간의 외형을 창조주 하나님들을 닮아 하나님들과 비슷한 모습이 되게 하자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왜 창조하려는 것인지, 인간창조의 목적과 관련되는 내용인데 하나님들에 의해 창조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존재 이외의 나머지 생명체들을 다스리게 하자는 내용이다.
창1:26의 히브리어 문장을 개신교측 개역개정과 천주교측 성경이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ㅇ개신교 개역개정 : 우리의 형상(히: 데무트; 헬:호모이오시스)을 따라
우리의 모양(히: 첼렘; 헬: 에이코나)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ㅇ천주교 구약성경 : 우리와 비슷(히: 데무트; 헬:호모이오시스)하게
우리의 모습(히: 첼렘; 헬: 에이코나)으로 사람을 만들자.
천주교 측의 번역이 문자적으로 히브리어 본문에 충실하다. 개신교 측의 개역개정에서 ‘형상’은 히브리어의 ‘데무트’이다. 이는 헬라어의 ‘호모이오시스(유사,흡사,비슷,닮음)’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천주교 측의 번역이 히브리어 본문을 문자적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했다고 말하게 된다.
[개신교 측의 개역개정은 헬라어의 호모이오시스만 ‘형상’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다. ‘에이코나(이미지, 생각 속의 형태, 관념상의 모습)’를 번역할 때에도 ‘형상’이라고 했으며(마22:20; 막12:16; 눅20:24; 롬8:29; 고전11:7, 15:49; 고후4:4; 골1:15, 3:10), 이데아(마28:3), 에이도스(요5:37), 튀포스(행7:43) 및 모르페도 ‘형상’이라고 번역했다(갈4:19). 모르페의 경우 빌립보서에서는 ‘본체, 형체’로 각각 번역되었다. 야고보서 3:9의 호모이오시스는 창1:26의 칠십인 역 호모이오시스와 똑같이 ‘형상’으로 번역됐다. 이처럼 개신교 측의 개역개정은 헬라어의 여러 단어들을 ‘형상’이라는 동일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어휘개념상 큰 혼란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