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를 운반하는 자들의 정체와 인원수의 불일치에서 보는 비역사성
∎언약궤 운반하는 자들의 정체와 인원수
ㅇ언약궤를 메는 자들의 정체 : 언약궤는 누가 메고 운반하는가?
언약궤는 레위자손들이 멘다(대상15:2). 그러나 레위인이면 누구나 다 궤를 운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레위인들 중 제사장들이 메고 운반하기 때문이다(신31:9). 레위자손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제사장이 아니다(수3:17).
그런데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레위자손으로서 고핫자손이 지정된다. 그러므로 언약궤는 고핫자손의 제사장들이 메고 운반한다고 정리될 수 있다(민4:15). 물론 고핫자손들 모두가 다 제사장일 수는 없다.
그런데 다윗 때에 상황이 달라졌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 사독이 제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레위자손 중 고핫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운반하는 것은 끝났다. 물론 역대상은 사독이 레위의 아들인 아론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으나(대상6:1~8) 역사적 사실여부를 판단하는 사료로서의 가치측면에서 성서가 어느 정도의 역사적 적확성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고려해 볼 때 그 진술의 신빙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삼상22:20; 23:6; 30:7은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로 되어 있으나 삼하8:17과 대상18:16은 아비아달의 아들 아비멜렉으로, 24:6은 반대로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으로 되어 있다. 삼상22:16에 의하면 아히멜렉은 사울에게 처형당했다. 그런데 대상 24:31에서 아히멜렉은 사독과 함께 다윗의 제사장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대상 15:11에는 다윗의 제사장이 사독과 아비아달이다.
이런 경우들로 인해 성서본문이 갖는 역사상의 사실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사상의 정확도와 관계없이 본문이 말하는 정황상 사독은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독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새로운 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므로 사독은 레위자손이 아니다. 아비아달 제사장이 있는데 다윗이 또 다른 제사장을 세워 예루살렘에 측근 제사장만 두 명이나 두었다는 것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독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 원주민 동화차원에서 그대로 제사장직에 두었던 인물이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는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 이전부터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예루살렘 원주민이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 이후 궤를 메는 제사장은 레위인 제사장들에 한정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적절하다. 그에 따라 레위인 중에서 제사장이 나온 것처럼 사독도 또한 그러하다는 무언의 동의 하에 사독이 레위자손으로 여겨졌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삼하15:24; 대상27:17; 겔40:46,43:19,44:15).
여기서 한 가지 특이사항을 볼 수 있다. 언약궤를 메는 것과 관련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처음 말씀이 다윗에 의해 수정되어 실행되었다는 사실이다!
ㅇ언약궤를 메는 자들의 인원수 : 언약궤는 몇 명이 운반하는가?
본문 간의 진술이 서로 다르다. 삼하15:27,29에 의하면 네 명이 메고 운반했다고 보게 된다. 운반자는 사독과 그의 아들 아히마아스, 그리고 아비아달과 그의 아들 요나단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대상 15:11~15에 따르면 여덟 명이 메고 운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음을 본다. 다윗은 레위자손이면 누구나 다 제사장이든 아니든 언약궤를 멜 수 있다고 본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 중에 제사장들만 궤를 멜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음이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상15:11~12에 의하면 왕이 지명할 경우 제사장이 아닐지라도 레위자손의 지도자에 한하여 그들도 궤를 멜 수 있었다.
의심하기 어렵게도 대상15:14~15는 제사장과 제사장이 아닌 레위인을 구별하고 있다. 그런데 레위인에 속하면서 제사장이 아닌 자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 궤를 메고 운반했다. 이들 중에서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지만 다른 여섯 명은 레위인일 뿐 레위인 제사장이 아니다. 그들은 레위인 지도자이다. 제사장이 곧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저 우격다짐일 뿐이다. 제사장이 지도자 반열에 들기는 하지만 반대로 지도자가 곧 제사장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윗은 예루살렘 성으로 언약궤를 옮길 때 제사장들만 입는 에봇을 입었다(삼하6:14; 대상15:27). 친히 어깨에 메지 않았지만 궤를 운반하는 데 직접 참여한 왕이 제사장복을 입었다. 그것은 종교가 정치구도 안에 놓인다는 것을 통해 제사장의 위치를 생각하게 한다.
ㅇ강자의 필요에 따른 말씀의 적용 : 강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사람을 위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변용되면서 적용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받는 사람 쪽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적용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기준이 지정되고 그에 기반하여 도출되는 해석의 결과에 따라 그 의미가 이리저리 달라진다는 매우 기초적인 상식적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결국 종교경전에 대한 이해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관성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이 될 때에는 가능한 대로 객관적인 설명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 역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