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가 종교문학임을 입증하는 사례 : 여선지자 안나는 몇 살인가?
이제는 사라져 흔적만 남게 된 한글 개역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번역본 성경들은 눅2:37에서 안나의 나이를 ‘팔십사 세’로 번역한다(개신교 측의 개역개정을 비롯하여 카톨릭의 번역판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84세(years old)’라고 번역하기보다는 36절의 ‘7년(year)’이라는 표현에 맞춰 ‘84년(year)’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더구나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영어의 till, untill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ἕως)가 ‘84년(year)’이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되어 ‘84년까지 과부였다’로 직역된다.
그런데 ‘84년(year)’이라고 번역할 경우 안나의 나이는 100세를 훌쩍 넘긴다. 그러므로 헬라어 본문의 36절과 연계시켜 동일한 리듬에 맞추지 않고 ‘84세(years old)’라고 번역한 것은 안나의 나이가 너무 많게 계산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당시의 연령대를 볼 때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100세가 훌쩍 넘도록 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아 통상적인 관점을 내세워 헬라어 본문의 의도를 인위적으로 제한시킨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37절의 ‘84세(year old)’로 번역된 ‘84년(year)’을 36절의 ‘7년(year)’과 같은 맥락에서 ‘84년’이라고 읽을 때, 여선지자 안나는 7년 간 결혼생활하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그 이후 ‘84년(year)’이 되는 해까지(till, ἕως) 혼자 지내왔다는 것이 되어 문장 앞뒤로 모순이 없는 적절한 번역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번역할 때 누가복음이 소개하는 여선지자 안나는 105세까지 산 것으로 기록된 외경 유딧서(16:23)의 존경받는 여인인 유딧에 비교된다. 유딧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장수하면서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여인이다. 그와 비슷하게 안나의 나이를 100세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게 되는 독자의 상상력에 기초하면 누가복음의 여선지자 안나 역시 유딧에 못지 않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여인으로 인상지어진다.
그 결과 여선지자 안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성전에서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기예수를 소개하게 된 경건한 여인”의 모델로 자리 매김된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여인에 의해 소개된 아기예수가 돋보이게 된다.
이것이 누가복음이 말하고 싶어하는 핵심점이다. 당시에 유대교를 넘어서야 하는 예수 따르미들은 유대인들의 성녀로 숭앙되던 유딧에 못지 않은 거룩한 여인인 안나를 통해 인증받은 예수, 그 예수의 사람들이라는 종교적 자부심을 이렇게 고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