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은 7명의 왕들을 생략했다. 그에 대한 기독교측의 일반적인 변증적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들은 정통 다윗계 왕들이 아니라는 점, 유대계열의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왕들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에 반해 마태복음 족보에 등재된 왕들은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선택받은 은총의 사람들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회개하여 용서받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힘썼던 왕들이었다고 설명된다.
과연 그럴까?
이런 주장을 기준점 삼아 예수계보에 오른 왕들과 삭제된 왕들의 면면을 대비하여 요약해 보면서 마태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교리와 그에 따른 주권적 선택교리에 이의 없이 동의할 수 있겠는지의 여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마태복음 계보에서 삭제된 왕들의 면면 요약
제외된 유대 군주(왕)들은 다음과 같다.
아하시야, 아달랴(여왕), 요아스, 아마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예수계보에서 제외된 왕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적-종교적 관점에서 ‘악질적인 왕’으로 묘사된다.
(1) 아하시야(왕하8:25~26; 대하22:1~4)
그는 특별히 악한 일을 한 것이 없다. 아달랴의 친아들로 북이스라엘의 악한 길을 따르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전부이다.
(2) 아달랴(왕하11:1~3; 대하22:10~23:15)
그녀는 아들 아하시야 사후에 왕권을 쥔 여왕이었다. 단지 여왕이었다는 이유로 마태복음의 예수계보에서 삭제된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계보에 등재된 다른 여인들에 비하면 오히려 족보에 들어갈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윗 왕가를 진멸하려고 했었다. 다윗의 정통성에 위협을 가한 여인이었다.
그 이유로 마태복음 저자가 그녀를 예수계보에서 삭제시켰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구약도 그녀를 연대기 안에 넣지 않았다. 역대기가 그녀의 이름을 뺀 이유는 여왕이었기 때문에 부계형 계보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3)요아스(왕하12장)
그는 말년에 타락하여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이었던 스가랴를 성전 안에서 돌로 쳐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다.
(4)아마샤(왕하14:1~22; 대하25장)
그는 에돔의 우상들을 가져와 섬겼다.
(5)여호아하스(왕하23:30~35; 대하36:1~4)
그는 살룸이라는 이름의 왕으로서 요시야의 아들인데 백성들의 추대에 의해 왕이 되어 3개월 동안 왕좌에 있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느고에 의해 폐위되었다.
(6)여호야김(엘리아김, 왕하23:36~24:7; 대하36:5~8)
그는 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애굽에 의해 임명된 왕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태운 죄를 저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렘36:29).
(7)시드기야(왕하24:17; 25:1~7; 대하36:11~21; 렘52:1~11)
그는 여고냐(여호야긴)의 숙부로서 부왕 요시야와 형제였으므로(대상3:15) 부계 세습왕조 형태의 족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 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왕계보에서 삭제된 이유가 가장 억울한 인물이다. 예수계보의 흐름에서 본다면 그는 적통 유대 왕이고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으면서 계보에서 제외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2. 마태복음의 예수계보에 등재된 남유다의 몇몇 왕들에 대한 요약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왕이 있을 수 없으므로 타국의 지배하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며 미래를 바라보았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할지라도 과연, 삭제된 왕들과 등재된 왕들 사이에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까? 삭제된 왕들과 달리 등재된 왕들은 야웨신앙에 충실했을까? 백성들에게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여 백성들로부터 추앙받는 정치를 했을까? 마태복음의 계보에 등재된 왕들은 무엇을 근거로 등재된 것인가? 등을 생각해 보게 된다.
(1)다윗
다윗은 충성스런 신하를 사지에 몰아넣어 전쟁 중에 사망한 것으로 꾸몄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취하여 솔로몬이 태어나게 했다. 마태복음의 예수계보는 다윗이 회개했다는 것에 근거하여 그 이후에 출생한 솔로몬에 대해 아브라함-다윗계보를 충실히 이어가는 왕으로 인정했다는 것이 통상적인 견해이다.
(2)솔로몬
솔로몬은 왕권에 도전한 형들을 과감히 처단했다.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에게 충성했던 장군도 제거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이교에 빠졌다. 그런 그가 다윗처럼 회개하고 용서받았다는 내용은 신구약을 통털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렀을 때에는 왕국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혈통의 적통성을 인정받아 예수계보를 이루는 정통성 있는 왕으로 등재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혈통 선택교리에 따른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솔로몬과는 달리 시드기야가 부계혈통에 적절하지 않아 제외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교리"에 심각한 질문이 던져진다.
(3)아하스(왕하16:1~5; 대하28:1~27)
아하스는 자녀를 불태워 이방신에게 바쳤던 자이다. 그는 이방종교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에는 주변국의 어떤 나라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 그는 야웨의 복주심과 상관없이 강력한 국력을 지탱했다. 그는 다메섹의 '야웨없는 강대함'을 보고 종교적으로 다메섹을 추종했다. 그 결과 아하스는 '악질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사야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보다 덜 악한 왕들은 삭제된 반면, 그는 유대 왕가의 혈통을 잇는 적통자라는 이유만으로 마태복음의 예수계보에 당당히 등재되었다.
그에 따라 혈통에 근거한 '일방적 선택'이라는 것에서 선택교리에 저항을 유발하는 근거가 된다.
(4)므낫세(왕하21:3~16; 대하33:11~13)
므낫세도 자기의 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게 했으며 이방종교에 열심이었다. 그것에 관하여 열왕기하는 매우 극렬하게 그를 악평한다.
하지만 그와 달리 역대하는 므낫세가 회개했고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셨다고 썼다. 그런데 놀랍게도 용서받은 므낫세와는 달리 그 후손이 벌을 받았다. 하나님은 므낫세가 저질렀던 회개 이전의 진노를 유다에 쏟아 부었는데 그 이유는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왕하23:26). 역대하에 따르면 므낫세는 개인적으로 용서받았다. 그러나 그 씨앗은 용서받지 못해서 므낫세와 상관없는 유다가 된통 당했다(왕하24:3~4).
이 사건에 대해 마태복음 저자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무한 은혜 속에서 므낫세는 예수계보에 등재되는 선택된 왕이 될 수 있었고 유다는 진노를 그대로 받아야 했다고 말하는 것인가? 선택받은 자의 죄의 대가를 그렇게 치르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인가?
왕하24:3~4는 분명히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가 원인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므낫세의 기도를 받았다는 역대하의 글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성서 자체도 서로 엇갈리는 견해를 나타내는데 '혈통'에 근거하여 마태복음의 계보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에 의한 선택교리는 '강자논리'일 뿐이라는 방향을 향하지 않을 수 없다.
3. 예수계보의 왕들과 삭제된 왕들의 사례에서 보는 신본적 ‘선택교리’의 비상식적인 억지성
마태복음의 계보에서, 왜 누구는 선택되어 등재되었고 누구는 왜 삭제되었는가와 관련한 질문은 교리사적으로 매우 뜨거운 감자였다.
이에 대해 “구원은 인간의지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한다”는 선택교리가 작동한다. 그에 따라 인간의 자유의지는 천박한 것으로 따돌림당하고 만다. 인간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도무지 인간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의 은총에 근거하여 구원받을 자가 택해지는 선택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인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매우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교리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했었다.
바울도 이와 관련하여,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고 하여 구원사건은 인간 쪽에서 구원받고 싶어하는 열정과 전혀 상관 없이 하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구원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임을 전제한 인상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은혜가 무엇이냐를 답하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무한은총은 구원으로 선택된 자들만 향유할 수 있는 “제한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제한구원을 말하지 않았다. 구원받은 자의 결과성 변화상태로 '사랑'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선택받은 자는 반드시 사랑을 구현하는 자의 상태로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이방적 경향성의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지극히 폐쇄적이었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적 선택의식에 반대하여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키는 복음을 전했다는 점에서 볼 때 타당하다.
그런데 깨져야 할 변질된 선택론이 이번에는 강자논리를 위한 교리로 나타났다. 16세기에 만들어진 개신교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천주교의 어거스틴 사상에 기반하여 형성되었다. 현재는 인간의 형상에 따라 인간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로봇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그 교리는 유행이 지난 과거사의 단편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여전히 성서적 정당성을 주장하며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것에 애용되고 있는 파편성 교리로 기능하고 있다.
4. 이런 류의 인위적인 신본적 선택교리가 남기게 되는 망나니 춤 같은 견해들
이런 변질된 선택교리의 부작용이 십자군 전쟁, 유럽의 100년 전쟁,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청교도의 인디언 학살만행, 흑인 노예제도의 합리화 등으로 나타났다. 칼빈주의의 이중예정론에 기반을 두는 선택교리의 예견되는 다양한 부작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우월적 지위에서 벌이는 강자의 폭력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앞세워, 매우 부당한 자기행위를 아주 적극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성서적 근거로 활용하였다.
선택교리에 근거하는 구원론의 오남용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비도덕적인 행태를 보이면서도 이런 구원론으로 무장한 자들은 매우 당당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유럽인들의 이주로 인해 발생한 천연두 등의 전염병이 원인이 되어 죽어가는 원주민들의 고통스런 죽음을 흐믓하게 바라보면서 자신들을 선택한 하나님이 원주민들을 죽이고 자신들에게 땅을 거저 주셨다고 주장하며 원주민들의 죽음을 하나님에 의한 청소라고 표현한 자도 있다.
이런 부당하고 부조리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여전한 세력을 떨치는 것은 ‘강자의 면모’가 미화되어 전파될 때 그 상대가 되는 약자의 무저항성 수용에 녹아져 버린 인간존재의 본성적 종교성이 그 토대가 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적절하다.
그에 따라 정화되지 못한 비상식적 종교관에 근거하는 인위적인 신본적 선택교리 관점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유럽에서 전해진 천주교를 일찌기 받아들여 천주교인들이 30만을 훌쩍 넘겼던 때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합리화할 수도 있게 된다. 그가 예수를 전혀 몰랐던 조선을 침략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망나니 춤같은 설명도 얼마든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5. 결론
성경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종교적 순기능을 권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방적인 강자논리로 둔갑하는 순간 은혜와 사랑을 앞세우는 기독교는 이권 앞에서 적대적인 종교로 변질되고 만다는 사실도 함께 볼 수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족보를 통해 보는 ‘계보에 등재된 왕과 삭제된 왕’에 대해 강자논리에 기반을 두는 우월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선택은총'을 설명하면 위에서 본 대로 상식선상에서 충돌만 발생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예수계보를 통해 마태복음 저자가 목표하는 종교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종교적 순기능이 발휘되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 선택교리를 내세워 하나님의 무한은총과 그에 따른 일방적인 선택을 운운하면서 선택받지 못한 자들과의 대비를 통해 자신의 우월성과 강성을 합리화하는 것은 제국종교의 부작용만 발생시킬 뿐이다.
종교단체가 순기능 차원에서 행하던 각종 봉사, 헌신, 사회활동, 복지활동 등을 정부가 나서서 행하는 시대, 인간의 과학적 지성이 보편화되어 상식선상의 기본지식으로 작용하는 로봇 시대에, 기독교를 포함한 전체종교가 쇠멸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단체의 중앙집권적 권력화는 가능한 한 빠르게 해체되어야 함을 예고하는 현상이라고 이해하고 후대를 기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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