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비평 및 교리와 삶/역사성

마태복음의 예수족보 - 인위적으로 편집되어 만들어진 비역사

YoungSoul's Pen 2026. 9. 19. 10:26

성경말씀은 그 자체로 틀림이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맹신을 성서 스스로가 부정한다. 마태복음 저자는 자신의 종교적 목적을 위하여 역사상의 사실을 아래와 같이 편집하여 만들어냈다.

 

 

1. 중간 세대를 건너 뛰고 윗 세대의 직계 후손으로 만든 생략형 편집

 

요람과 웃시야 사이,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의 가운데 낀 세대의 왕들을 깔끔하게 생략한 편집술과 비슷하게  12절은 [스알디엘 ➔ 스룹바벨]로 직결되었다. 이것은 중간세대 생략은 아니다. 윗 세대 아버지를 생략하고 숙부에게 연결시킨 편집이다. 

 

이 생략으로 인해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의 부친이 되었다. 역대상 3:17~19에 의하면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 아니다. 스룹바벨은 브다야의 아들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저자는 친아버지를 제거하고 숙부의 아들로 만들었다. 그 결과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 되었다.

 

스룹바벨은 포로기 이후 다윗 왕가의 법적 대표성을 갖는 인물로 알려진 총독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저자는 이것을 정통성의 맥으로 보고 스알디엘에서 스룹바벨을 직결시켜 [여고냐 ➔ 스알디엘 ➔ 스룹바벨]로 편집했다. 그로 인해 자식없이 사망한 스알디엘은 먼 훗날 마태복음 저자의 족보편집 덕분에 조카를 자신의 직계 아들로 삼아 예수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이렇게 마태복음 저자는 자신의 종교목적을 이루기 위해 역대상에 멀쩡히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무시하고 유대의 족보를 인위적으로 편집하는 창작성을 발휘했다.

 

 

2. 마태복음 예수계보의 스룹바벨 이후 인물들은 정체불명의 인사들

 

구약의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귀환을 이끈 총독이다. 뿐만 아니라 역대상 3:19 이하에 적혀 있는 스룹바벨 이후의 인명들을 마태복음의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일치하는 이름이 없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의 예수계보에 나타나는 스룹바벨 이후의 인명들은 인위적으로 작명된 무존재의 인물명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3. 역사적 간극을 종교목적의 편집으로 간단히 메꾼 인위적인 창작물

 

스룹바벨의 포로귀환 시대(주전 6세기 중반경, 537년) 이후 예수 때까지 약 540여 년의 시간 간격이 존재한다. 이 간격을 메꿀 수 있는 유대의 정통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스룹바벨 이후 인물들의 실존성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고사하고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름들도 아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저자는 몇 명의 유령인물을 만들어 등장시켰고 길고 긴 시간 차이를 14라는 숫자로 간단히 메꾸었다. 그렇게 작업한 이유는 다윗 왕가의 정당한 왕위 계승권이 예수에게 있다고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스룹바벨 이후 예수에 이르기까지의 이 기간을 14대에 맞추어 보면 각 세대의 세대와 세대 사이 간격이 약 38년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 차이가 38년 정도의 시간 차이를 갖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부친이 첫 아들을 낳은 나이가 38세라는 의미가 된다.

 

주전 6세기 당시의 일반적인 평균수명과 통상적인 초혼연령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한 수치이다.

 

한국에서 공무원 연금이 처음 만들어지던 때의 남자평균 수명이 대략 53세 정도였고 초혼연령은 대략 25세 전후였다. 그러면 평균적으로 부모와 자녀간의 세대 간격은 25년 정도라는 계산이다. 이를 기준으로 14대를 계산하면 350년 정도의 세월이다. 계산 편의를 위해 세대 간의 시간 차이를 30년으로 볼 경우 14대를 계산하면 420년 정도이다.

 

이 420년이라는 수치(정확하게는 430년, 출12:41)는 출애굽기에서 볼 수 있는 과장법의 대표적인 수치이다. 중국식의 과장법을 뛰어 넘는 출애굽기의 이런 초대형 과장법은 4대만에 200만이라는 인구수가 되었다는 기록에서 발견된다. 창세기에 의하면 야곱에게 주어진 약속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의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창15:16)." 그런데 이 약속은 5대만에 이뤄진 것으로 나타난다[야곱(애굽 입성) ➔ 레위 ➔ 고핫 ➔ 아므람 ➔ 모세(출애굽)]. 문제는 애굽에 들어갈 때의 70여 명이 4대~5대 만에 장정만 60만으로 불어 약 200만으로 추산되는 인구수가 출애굽을 했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고대 역사상 이런 탈출이 있었다면 애굽은 주변국에게 조용히 정복당했을 일이다. 그러나 고대사에서 확인되는 바 결코 이런 일은 없었다. 애굽 왕조를 통해 보거나, 주변국의 기록을 보거나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제 역사이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14대라는 수치도 출애굽기의 수치가 매우 인위적인 과장법에 의한 것과 다르지 않게 주전 6세기에서 주전 1세기까지의 500여 년을 14라는 수로 꿰맞춘 편집작업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4.결론

 

마태복음의 인위적인 창작 단편물인 예수계보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당연한 기록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종교목적을 위해 창작된 문학적 기록이라고 단언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마태복음은 성서영감설과 상관 없이 만들어진 종교문학적 기록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성서는 반드시 해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런 오류들, 모순들, 의도적인 편집 등에 대해 삶의 현장의 상식선상에서 해석이 안 되면, 예수의 이름으로 장사하는 종교장사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떤가? 정상적인 인간의 양심을 갖고 있다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