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 이해를 위한 성서와 교리 비평/문학성

창조설의 한계: 눈에 보이는 것에 국한된 계시

YoungSoul's pen 2021. 8. 27. 14:35

창조이야기에 의하면 육지의 생명체들은 모두 그 종류대로 제각각 땅이 내는 발생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다(24). 육지의 모든 식물들은 이미 셋째 날에 땅이 발생시키는 지상의 생명체로 창조되었다(11~12). 창조주의 명을 받은 땅이 생명을 발생시키는 동력의 실제 매체로 기능했다는 뜻이다. 육지짐승들의 발생도 이와 비슷하다(24).

 

11절에서 땅은 온갖 식물들의 싹을 내는 동력이다. 24절에서 온갖 종류의 육지생물들의 발생동력은 땅이다. 그런데 수중생물들에 대해서는 물들이 생명발생의 동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창공을 나는 새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수중생물들의 개체수 증가는 물에 의한다(20). 그리고 20절과 22절 내에서 수중생물들의 개체수가 증가하는 장소는 물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중생물들의 발생동력은 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와는 다르게 새들의 번식증가 장소는 땅으로 되어 있다(22). 그러나 번식에 의한 개체수 증가의 장소가 땅이라고 해서 개체수 증가의 동력도 땅인 것은 아니다. ‘땅에 증가하라(22)’는 말은 히브리어 성서에 땅 안에서(바아레쯔) 증가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땅은 개체수가 증가되는 곳, 즉 장소개념이지 개체수를 증가시키는 동력개념이 아니다.

 

더구나 물들이 수중생물들의 번식동력으로 이야기되는 것에 바로 이어서 하늘을 나는 새들은 하늘의 물들이 있는 창공(알페네 레키아 핫샤마임; 하늘들의 궁창 표면 위)을 날아다니는 것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20) 새들의 발생동력은 하늘의 물에 의한다고 보게 된다.

 

육지짐승들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생명체 발생의 동력인 땅에서 다양한 육지짐승들의 각 생명들이 기원하였다(24). 그런데 땅을 발판삼아 살아가는 육지짐승들의 번식동력은 물도 아니고 땅도 아니다. 땅은 여러 다양한 종류의 육지짐승들을 발생시킨 동력으로 기능했을 뿐이다(24).

 

수중생물들과 새들의 개체수 증가에 해당하는 표현이 세 번(20,21,22)이나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육지짐승들의 개체수 증가에 관련된 창조주의 지시나 명은 없다. 다만 종류대로 만들어졌다는 종의 다양성만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24~25). 이 강조는 하나님의 기쁨이 개체수의 양에 있지 않고 생명체들의 다양성에 있다는 것에 더욱 도드라지게 부각된다.

 

하나님이 무엇에 대해 좋다고 했는지를 훑어보면, 하나님의 기쁨은 개체수의 증가에 따른 수의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의 다양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 따라 육지짐승들, 특히 당시의 부를 가늠하던 가축들과 관련하여 개체수 증가에 직결되는 가축들의 번식력은 하나님의 축복말씀으로 나타날 만한 한데 뜻밖에도 그렇지 않다. 각 짐승들 개개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개체 짐승들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당시 인간 삶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을 가축떼의 번식은 인간의 역할과 연관된 것으로 본 것 같다(26절 이하 참조).

 

한편 셋째 날의 식물들에 대한 창조이야기에서 저자는 수초(aquatic plants)라고 불리는 수생식물들(hydrophyte)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침수식물들(submerged plants)에 대한 지식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창조이야기 저자에게 식물들 중에도 수중생물들처럼 물속에서 사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이 있다는 지식이 있었다면 더욱 감동적으로 생명에 대한 계시를 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였던 시대적 한계에 제한을 받은 결과 수생식물, 나아가 침수식물들의 생명활동을 통한 계시의 말씀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종교적 계시는 계시를 받은 당사자가 살고 있던 시대적 상황에 제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였던 해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일차적으로 먼저 주는 삶을 위한 말씀이었다. 이 점을 참작하고 종교문헌을 대하는 것이 상식적인 태도이다. 그럴 때 지금 현재 형태의 창조이야기가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