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 이해를 위한 성서와 교리 비평/문학성

창조활동의 결과에 대한 창조주의 자평, ‘보기에 좋았다’의 특징

YoungSoul's pen 2021. 9. 23. 19:46

창조이야기에서 창조주 엘로힘이 자신들의 창조활동에 대해 좋았다고 자평한다. 모두 일곱 번이다(4,10,12,18,21,25,31). 이를 내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존재자체에 대한 평(1:4)

 

1:4에서 좋았다는 어둠을 밝히는 빛에 대한 평가이다. 빛이 보기에 좋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빛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좋았다의 대상은 빛이라는 존재그 자체를 가리킨다.

 

 

2. 동등개념에서의 평(10)

 

10절에서 좋았다는 표현은 육지와 바다가 나누어진 모습을 상대한다. 육지와 바다 중에서 어느 하나만 상대하지 않는다. 육지와 바다의 동등개념이 전제된 표현으로 둘 모두다 포함된다. 생명체들의 삶이 대체로 육지에서 이루어지지만 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음을 바탕에 전제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라는 개념은 내륙의 거대호수도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갈릴리 호수를 갈릴리 바다라고 부른 것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바다와 육지가 접해 있거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경우가 삶의 상황을 이상적으로 만드는 지리적 환경이겠다는 인상이 묻어난다.

 

 

3. 다양성에 대한 평(12)

 

12절에서 육상식물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스런 자평은 종의 다양성에 있다. 다양한 식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상태가 보기에 좋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의 식물만을 대상하여 좋았다고 평하는 편애성적 기호는 나타나지 않는다.

 

 

4. 어둠에 대한 뜻밖의 평(18)

 

18절은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는 현상에 대한 평가이다. 4~5절과 연관시켜 하나님이 좋았다고 평한 것이 빛임을 고려할 때 좋았다는 평에서 어둠이 제외될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위에서 보는 대로 창조주 엘로힘의 자평은 존재자체에 대한 호평과 동등성(평등성), 그리고 다양성을 상대로 평가되는 호평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광명체들로 인해 나누어지는 빛과 어두움 중에서 빛만 보고 좋았다는 호평을 한 것이 아니라 어둠이 지배하는 밤을 포함하여 낮과 밤을 모두 좋았다고 평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다양한 광명체들을 대상으로 그것들 자체에 대해 좋았다고 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1번 참조). 또 해와 달과 별을 동등하게 보는 관점에서 그것들을 대상으로 좋았다는 평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2번 참조). 나아가 여러 광명체들에 대한 다양성의 입장에서도 좋았다는 평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3번 참조).

 

왜 그런 것인가? 아마도 광명체들의 역할, 혹은 기능을 더 중시한다는 관점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광명체들은 빛을 발산하여 어둠을 제어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광명체들이 해야 하는 빛과 어둠의 나눔이라는 역할이 수행되지 않는다면 광명체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광명체들을 상대로 좋았다는 평이 없는 것은 광명체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광명체들의 창조와 관련되어 계속 이어지는 내용은 광명체들이 감당해야 하는 낮과 밤의 구별 기능 혹은, 광명체들이 빛을 냄으로 낮과 밤, 계절들이 교차적으로 순환하여 나타나게 하는 역할과 연관된다(14~18). 따라서 각 천체들이 각각의 창조이유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존재의 명분이 없어지므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존재해야 하는 가치도 없게 된다.

 

다른 하나는 좋았다는 평이 광명체들에 의해 나누어지는 낮과 밤의 분리 현상에 대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18). 낮과 밤을 주관하는 해와 달과 별들을 상대로 보기에 좋았다고 평한 것이 아니다. 해와 달과 별에 의하여 낮과 밤이 나누어지는 현상을 보고 만족스러워서 좋았다고 평한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종교언어에서 어둠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죄와 죽음 등을 가리키는 인상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와 달과 별들에 의해 나누어지는 낮에 대해서만 좋았다고 평한 것이 아니라 나누어진 낮과 밤좋았다고 평가되었다. 창조주 엘로힘은 빛에 의해 나타나는 어둠의 극복, 빛으로 인한 어둠의 정복을 좋았다고 평한 것이 아니다. 광명체들로 인해 나누어진 빛과 어둠, 낮과 밤 모두를 상대로 보기에 좋았다고 평했다.

 

낮과 밤이 나누어지는 현상에서 어둠이 포함된 좋았다는 평가를 두고 이를 존재자체에 대한 호평, 각 존재들의 동등성에 대한 호평, 그리고 종의 다양성에 대한 엘로힘(하나님들, 엘들)의 호평성향(好評性向)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분명한 사실은, 창조이야기에서 천체들에 대한 호평은 해와 달과 별들을 상대하지 않고 천체들이 발산하는 빛의 기능에 의해 어둠이 나누어지는 낮과 밤의 분리 현상’, 혹은 낮과 밤으로 분리되는 상태를 상대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선한 하나님이 왜 세상에 악을 허용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5.수중동물들과 조류들에 대한 평(21)

 

분명하게도 21절에 수중식물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조류 중 가금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아마도 물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수륙양용 짐승들과 비슷한 개념으로 인상지어져 공중과 땅을 오가며 산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기에 같은 날 창조된 것으로 분류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자평은 역시 종의 다양성에 있다. 각각 그 종류대로 만들어져 다양한 종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좋았다고 평가 되었다.

 

 

6.육상짐승들에 대한 평(25)

 

육상짐승들이 창조된 이후의 호평 역시 종의 다양성을 상대한다. 각각의 개개 생명체들이 호평의 대상이 아니다. 종류별로 창조된 생명의 다양성이 보기에 좋았다는 평가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창조주의 호평은 개개의 생명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워했던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게 된 것에 대한 평임을 알 수 있다.

 

 

창조설은 과학을 말하는 글이 아니다. 종교적인 교훈을 주려는 목적에서 기록된 종교언어이다. 따라서 창조이야기는 종교적인 시각을 갖고 종교적 차원에서 읽어져야 마땅하다. 그럴 때 인간존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며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바람직스런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와 같은 종교적 시각이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내면적으로 각인될수록 인간은 자연의 일부를 이루는 생물학적 존재임을 잘 인식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로서 주어진 수명 동안 서로 다름이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한 요소로서 세상을 겸허하게 사는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