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정경의 구절 중,
히브리 사람에게 팔린 히브리인 여자 종의 삶에 대해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회-경제적 여력이 있는 자는 어떻게 해야 더불어 같이 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이 있다.
여자 종을 대하는 여력 있는 있는 자, 가진 자, 있는 자의 진솔한 모습(출21: 7~11)
히브리 사람이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경제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이는 딸을 남의 집 종으로 주는 경우를 말하는 대목에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7절 이하의 내용은 분명하게도 경제적인 측면을 가리킨다. 예외가 없을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자기 딸을 남의 집에 종으로 판다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거의 없다.
히브리 사람의 집 딸을 종으로 사게 된 히브리 사람은 남의 집의 그 딸을 아내나 며느리처럼 대해야 한다(8절~10절). 이것이 히브리인들을 애굽의 노예처지에서 구원한 야웨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잘 나가는 히브리인은 애굽의 바로처럼 히브리 노예들을 대하면 안 된다.
요셉이 극심한 가뭄 동안 수다한 민족들과 더불어 같이 살았던 것처럼 히브리인들은 함께 더불어 같이 사는 이웃의 히브리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진 자 히브리인은 갖지 못한 약자 히브리인을 대할 때 야웨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는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11절 참조).
이처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히브리 사람들은 조상들이 겪었던 애굽에서의 종살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상들이 겪었던 엄청난 종살이의 참담함을 남의 집 딸에게 반복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경제적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의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S여대 초대총장의 일화
S여대 초대총장의 일화는 시대도 다르고 삶의 내용도 같지 않아서 일반화시키기에는 굴곡이 많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때에 한국의 딸이 한국 사람에게 종으로 팔린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던 그녀의 고난상황과 인생, 그것을 수천 년 전 히브리인으로서 히브리 사람에게 종으로 팔려야 했던 때의 히브리 여성들 처지를 비교해 보면서,
강자와 약자가 뒤섞여 함께 살고 있는 세상에서 서로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오늘날 여력이 있는 자와 힘들고 어렵게 종살이 하듯 고난의 때를 지나야 하는 자들은 피차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서로 함께 행복을 나누는 삶인지를 생각해 본다.
교회사 속에서 그녀의 약력
기독교 조선감리회 부인회 연합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여선교회 전국연합회장)
일제 때 무남독녀로 태어나 19살에 결혼했던 그녀는 충남 예산 출생으로 일찍이 감리교 선교지였던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그러나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돌연사하는 바람에 아이도 없는 혼자의 몸이 되었다. 그녀의 딱한 상황에 대해 ‘어쩌면 좋으냐’는 동정의 말들이 넘쳤으나 실제적인 그녀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머리를 잘라내며 모질게 결단했다고 한다.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아는 사람을 찾아갔다. 그나마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사정을 들은 지인은 너무도 안 된 마음에 어느 집에 가정부로 소개했다.
가정부로 들어간 그녀는 열심히 일했다. 그것이 집주인 내외를 감동시켰는지, 예나 지금이나 돈푼 꽤나 좀 있다는 작자들은 횡포질하면서 사람 괴롭히기 일쑤인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게 된 집이라서 그랬던 것인지는 몰라도 집주인 내외는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있느냐, 들어줄 수 있다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때 그녀는 두 가지를 말했다고 전해진다. 묻자마자 답했다는 것은 평소에 마음에 품고 있던 꿈이 있었다는 뜻이다. 마음에 품고 있는 꿈이 없었다면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다 놓치고 만다. 그녀가 말한 두 가지는 공부하고 싶다는 것과 일요일에는 꼭 교회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집주인 내외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기특한 소망이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교회 다니며 공부하겠다는데 그건 네 처지에서 절대 안 될 말이라고 잘라낼 수 없는 장한 바람이었다. 공부하고 싶다면 대체적으로 긍정반응을 보이는 평균 정도의 인품과 지성을 지닌 한국인 감동정서에 근거하여 두 가지 모두가 허락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주인 내외의 배려에 감사하여 주경야독의 노력 끝에 지금의 숙명여고 전신인 숙명여고보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여사대 가사과(의상재단 전공)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귀국하여 고교교사를 하던 중 숙명여전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후에 교장이 되었고 숙명여자대학교라는 교명으로 종합대가 되면서 초대 총장 겸 대학원장을 지냈다는 것이 그녀의 약력이다.
이처럼 히브리 사람에게 여종으로 팔리는 입장과 일제 강점기 때 가정부로 살아야 했던 그녀는 시공의 차이 외에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약자의 처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히브리 여종에 대한 규정을 지킨 것과 같이 그녀에게 삶의 기회를 주었던 집 주인 내외의 배려에 힘입어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성취의 삶을 살 수 있었다.(물론 일제강점기 때에 한반도 무력 침략자들이 휘둘러대는 만행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시키는대로 행하므로서 친일파 행적자로 이름을 남기긴 했지만....)
여기서 본인 자신의 노력도 중요지만 그녀를 딸 같이 대하면서 물심양면 후원했을 이름 모를 집주인 내외의 인품을 생각해 보게 된다. 여력 있는 자들, 돈 좀 가진 자들이 약자들을 키우는 세상, 함께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강자들의 사회적 배려가 좀 더 행복한 사회공동체를 이루는 기초임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은 종제도가 없어진 만인 평등의 시대라지만 경제상황의 여건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의 대부분의 수다한 사람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가진 자, 있는 자, 여력을 갖고 있는 자와의 사이에서 주종관계나 다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사회공동체 전체 차원에서 결코 가능하지 않은 국소적 현상이겠으나
노예제도가 있었던 시대에 주어진 주종관계 관련 말씀을 통하여 ‘더불어 행복하게 같이 사는 사회’를 위한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신약의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엡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엡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골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세상이 만들어진다면.....얼마나 좋을까.....라고 소망 중에 바라는 중에
주어진 자기 인생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교적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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