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 이해를 위한 성서와 교리 비평/윤리도덕

행복 세상 만들기- 히브리 정경의 공평처리와 형평성 구현원리

YoungSoul's pen 2023. 5. 19. 14:57

다양한 규정을 만든 이유

 

히브리 정경에 나타나는 고대의 다양한 법규들(출21:12~23:9)은 각각의 규정들을 있게 한 기초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무엇보다도  히브리인들 자체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에서 더불어 같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것인지의 원리가 무엇인지 잘 나타난다.
 
야곱의 아내가 넷이라는 것에서 출발되는 아들들의 다양성이 그것이다. 이를 단순히 고대문화의 결혼관습에 따른 것이라고 보면 안 된다. 그러므로 저 고대에 이스라엘에게 다양한 법규들을 있게 한 기초원리의 토대는 다양성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출애굽 때에도 다양한 종족들이 히브리인들과 함께 나왔다는 것에서, 나아가 가나안에 정착할 때 기브온을 수용했다는 사실과 그 이후 가나안을 단숨에 군사적으로 정복하지 못했다는 사사기의 정황을 볼 때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연합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법규들 안에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신을 바탕에 깃들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처음 유대교를 형성한 정신문화 종교계 지도자들은 히브리 정경의 종교문헌을 지금의 형태로 최종 편집할 때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된 법규를 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양성을 하나로 묶기 위한 통일성의 기초원리를 바탕 삼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 국가 공동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와 관련된 구체적인 여러 실행방안들을 공포할 때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말씀으로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국가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에서 다양성이 하나로 묶여 조화를 이루는 통일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 부각된다. 따라서 “어떻게 이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게 할 것인가”에 직결된 기초원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현대의 다양한 사회문화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표본적인 예로 중시되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초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 두 가지만 들면 아래와 같다.
 
 
1.공평처리의 원리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차별당하지 않음, 정당성 있는 공평”이 구현되어야 한다. 강자-약자, 남자-여자, 정상인-장애인, 부자-빈자, 건강한 자-병든 자.... 등의 대립구도 속에서 차별 당함이 드러나는 공동체라면 그 공동체는 결코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공평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행복한 공동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떤 일에서든지 공평처리가 실행되어야 한다.
 
히브리 정경이 말하는 야웨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다. 그에 따라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어떤 일처리를 하든지, 어떤 태도를 갖고 생활하든지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따라 공평하게 일이 처리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로부터 차별당했다는 원망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차별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불공평하게 처리되었다는 불만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야웨 하나님의 공평성과 그에 따른 공평처리 방식은 동해(同害)복수법, 혹은 동태(同態)복수법(21:23~25)을 통해 잘 나타나며  피해자 구제우선 정신에 잘 반영되어 있다. 공평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행한 대로 받는다(뿌린 대로 거둔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격언을 생각하게 한다. 이에 대해서는 레24:17~22를 통해 단단히 다질 수 있다.
 
[사람을 때려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라. 짐승을 때려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다. 사람이 만일 그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다.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 것이다.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할 것이다.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라.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해야 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2.형평성의 원리
 
이것은 공평성의 보완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공평하게 처리한다는 것은 동일선상에 올려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공평처리의 결과로 인해 “억울하다, 부당하다는 원망”이 발생할 수 있다. 공평처리에 의해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균형의 상황을 수정하여 균형을 맞추는 일이 형평성의 원리를 구현하는 일이다.
 
공평처리라는 것은 차별 없이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차별 없이 처리한다면서 이렇게 획일적으로 모든 사안들을 동일선상에 올려놓을 경우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이 숱하게 발생한다.
 
이것을 유치원생과 고등학생을 차별 없이 대한다면서 똑같은 액수의 용돈을 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동일선상 처리방식은 고등학생에게 문제가 된다. 유치원생과 똑같이 받은 액수는 고등학생에게 절반의 가치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공평처리의 원리에 따를 때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12,14,15,16,17,20). 하지만 가해의 상황도 고려되어야 한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여야 공평하다”고 해서 “살인자에 대한 조건 없는 처형”이 실행되면 그것으로 인해 고의성이 전혀 없이 발생한 살인과 고의적인 살인과의 사이에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 그래서 비록 사람을 죽인자라고 할지라도 억울하다는 하소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 한다. 동시에 고의가 전혀 없이 발생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적절하게 배상되어야 형평성에 맞는다(18절~19절, 22절). 
 
가해자를 징벌했다고 해서 피해자가 당한 피해가 적절하게 배상되는 것은 아니다(20절~21절, 26절~27절). 그것은 고대사회에서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인종차별, 성차별, 사회적 지위나 신분, 혹은 직업차별 등의 문제에서 부딪히는 흔한 문제들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신체적인 해악은 없다고 할지라도 차별에 의해 받는 정신적 피해는 신체적 고통 못지않은 타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한 사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고 피해자는 그 피해를 적절하게 배상받아 가해와 피해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형평성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된다.
 
 
"공평처리와 형평성 구현"을 이해하기 위한 일화
 
큰 아이가 8살쯤, 작은 아이가 5살쯤 때의 일이다. 아내가 요구르트라는 자그마한 유산균 음료수 여러 개가 한 묶음으로 된 상품을 몇 개 사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아이들에게 ‘놀다가 목마르면 하나씩 꺼내서 먹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공평성과 형평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일화가 되기까지 그 동안 둘째가 말하지 않아 몰랐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강한 자가 내세우는 공평논리의 위세에 눌려 균형이 깨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약자는 강요되는 그 불공평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휘둘리고 만다는 사실을....
 
목이 말라 요구르트를 먹을 때마다 형 녀석이 동생에게 ‘너 하나, 나 하나’ 했다고 한다. 아주 매우 공평한 공정분배이다. 이에 대해 불공평을 논할 위인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공평논리를 내세운 바로 그 다음 즉시 불균형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섯 살쯤 밖에 안 되었던 둘째는 요구르트를 그렇게 즐겨 먹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 이르도록 형 녀석의 불균형 갑질에 당하기만 했다. 
 
둘째가 군을 제대하고 한참 지난 어느 날, 복무 때에 직무를 공정하게 하지 않아 불평불만의 원성을 들었던 어느 고참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것에 이어져 둘째의 서글픈(?) 추억이 살아나 표현되었다. 어렸을 때 자기도 형한테 그런  불공정 방식으로 갑질당했다면서....
 
형 녀석이 왈, ‘내가 너보다 세 살 많잖아. 그러므로 하나, 둘, 셋’.... 그러면서 요구르트를 먹을 때마다 형 녀석은 네 개씩 먹었고 자신은 한 개만 먹었다고 한다. 생각할수록 ‘이거...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형 녀석의 갑질 공평성 논리에 휘말려 아빠나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그때마다 넘어 갔다는 얘기였다.
 
아빠가 알았더라면 형 녀석의 갑질 공평논리 횡포는 한방에 무너졌을 텐데.... ‘형아랑 아빠랑 나눌 때, 형아는 한 개, 그럼 아빠는.... 아빠는 30개야?’
 
 

형평에 맞고 불공평하지 않으려면....


이런 일들은 어린애들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각 분야에서도 부지기수로 발생한다. 그렇기에 야웨 하나님에 대해 히브리 정경이 말씀의 하나님이라고 하듯이 공평논리를 내세운 강자의 권력질적 불균형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로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수단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공평논리를 내세워 권력질 하는 자들은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자신들의 공평논리에서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다. 제삼자가 보더라도 공평처리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증거, “자로 재고 칼로 긋듯이 동일선상에 올려놓는 공평한 일처리의 결과”를 힘차게 내세우면서 스스로도 공평하게 일처리 얼마나 잘했냐고 자찬하며 더욱 갑질에 힘을 쏟아붓는다. 
 
이런 따위의 강자횡포가 사라지고 차별이 없는 행복한 조화의 한마당 행복인생을 사는 행복사회를 이루려면, 강자의 공평논리로 인해 발생하는 불균형 상황을 조정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형평성 구현의 수고가 늘 뒤따라야 한다.